화가 김의창의 그림이야기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

  1. 서론 : 고갱의 그림

   프랑스 화가 폴 고갱( Paul Gauguin 1848 - 1903 )은 평범한 금융회사 직원으로 다섯 자녀와 아내와 행복하게 살던 아마추어 화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내와 자식들과 결별하고 가정을 뛰쳐나와 전업 작가로서의 생을 살아갑니다.

   화가로서의 힘든 생활에 견디다 못한 고갱은 그간의 모든 작품을 공매로 다 팔아치우고서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으로 옮겨갑니다. 그곳에서 원시 흑인들의 생활을 화폭에 담습니다. 그러다가 1897년 이 그림을 그리고는 음독자살을 기도했는데 실패하고 그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외롭게 사망합니다.

   이 그림의 제목이 하필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
(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입니다.

   고갱뿐만 아니라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들은 누구나가 이 질문을 마음속으로 되 뇌이며 살아가는 가 봅니다.  나도 내 나름대로 이제까지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온 것을 여기에 글로 써보고자 합니다.

   성경이나 불경의 구절을 많이 인용하면 특정 종교를 믿는 이들에게 거부감이 있을까하여 종교적인 이야기는 줄이려 합니다.  될 수 있으면 객관적인 사실에다가 제가 겪은 일들과 생각한 것들을 여기에 쓰고자 합니다.






2. 영혼은 있는가?

   내가 누구인가? 내 몸과 내 마음 중에 어느 것이 나일까요? 파스칼의 말과 같이 생각하고 생각해보아도 결국 나는 이 생각하는 내가 바로 나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하였다나요?
  
   결국 내 마음 즉, 내 정신이 나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간이 죽으면 이 정신을 영혼이라고 부릅니다. 몸은 영혼이 머무르는 집으로 보아 영혼의 집이라고 종교에서는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죽어서도 영혼이 남아 있느냐 하는 것이 바로 문제가 됩니다.
  
   제가 30대쯤 되었을 때에 어떤 청년 두 명이 검은 가방을 들고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선생님은 내세가 있다고 믿습니까?’  검은 성경 같은 책을 들고 나타난 이 사람들은 그 성경책을 펼쳐 나에게 읽게 했습니다. 그 성경에는 ‘(죽으면) 그 영혼이 사라져 없어질 것이다....’라고 씌어져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제가 기독교에 대해서나 혹은, 성경에 대해서 생각하던 것과는 전연 다른 내용이라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충격을 받은 것을 보고는 그들은 매주 금요일마다 저를 방문하여 성경에 대해서 논의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저는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후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들은 나를 그들의 종교로 이끌 절호의 기회를 이렇게 쉽사리 버렸던 것입니다. 그 일이 지금도 제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 성경을 펼칠 때면 그 구절이 어디에 있는가 하고 계속 찾아보았습니다마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로 기회 있을 때마다 기독교 신자인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마는 한결 같은 대답은 성경의 한 구절을 과대 해석하는 집단일 거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그 이후로 저는 거의 무신론자, 영혼의 존재를 거부하는 사람이 되어 갔습니다. 더구나 전신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에 느끼는 그 공허함. 즉, 마취되어 있는 동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던 그 기분을 그대로 영혼이 없음으로 굳게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취의 경험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면 한 결 같이 모두가 나처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저는 무신론자, 영혼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계기가 있어서 영혼의 존재를 믿게 되었는데 그걸 이야기하겠습니다.



3. 저승은 있는가?

   흔히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어릴 때부터 들어온 바 그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저승사자의 인도를 받아 가다가 어떤 개울을 건너게 되었는데 그만 개울에 빠져서 깨어보니 다시 살아났더라.’
   ‘저승사자에게 이끌려 염라대왕에게 갔는데, 너는 아직 멀었다면서 탁 치는 바람에 깨어보니 다시 살아났더라.’

   그런데, 그 저승사자라는 사람의 모습이 우리나라 사람이 보았다는 저승사자는 검은 한복에 검은 갓을 쓰고 있는데, 서양 사람이 보았다는 드라큐라 등의 귀신을 보면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사후 세계가 있다면 이는 동서양, 어느 나라든지 귀신의 모습은 같아야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간단히 말해서 그 죽었다는 사람은 덜 죽은 사람이고, 그들이 보았다는 사후의 세계는 그들의 상상의 산물이 아닌가 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상상하기를 제가 죽은 후에는 아무 것도 없으므로 공허하기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저 바위 하나가 바닷물에 씻기면서 그 바위 자신은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듯이 그러한 사후 세계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제까지 다른 이들이 죽어도 여전히 평상시와 다름없이 살아온 것과 같이, 제가 죽고 난 다음에도 살아 있는 다른 사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이미 죽은 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잘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그동안 상상해온 사후 세계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즉, 죽으면 그 영혼이 사라져 없어질 것이라는 쪽이었지요.




4. 천당과 극락은 있는가?

   이러한 무신론적인 생각을 품고 있던 저로서는 기독교 신자는 천당에 가고 불교신자는 극락에 간다는 등의 허황된 말장난만 하였지, 천당이나 극락과 지옥 같은 것의 존재를 전연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천당이란 예수님이 어리석은 백성을 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서 지어내신 말씀이라거나, 극락이란 부처님께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방편으로 하신 말씀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이지 종교 서적을 좀 더 읽어보면 읽어볼 수록 이건 제가 생각하던 것과 같은 결론이어서 역시 제가 옳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고 느끼게 됩니다.

   어릴 때에 무당이 굿을 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속으로는 ‘저 무당은 정말 귀신이 있다고 믿을까?’하고 무척 궁금해 했었습니다. 또 절에 가서 스님이 부처님께 염불을 하는 것을 보고 ‘저 스님은 정말 부처님을 믿을까?’하고 불경스러운 생각을 품곤 했었습니다. 교회에 가서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을 때에도, 성당에 가서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따라서, 성 어그스틴(St. Augustine)이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라고 고백했다는 말이나, 종교인협회회장까지 역임한 강원룡 목사 같은 분이 ‘과학 앞에 사라진 신’이라는 제목으로 ‘저 푸른 허공을 아무리 쳐다보고 쳐다보아도 거기에는 천당도 없고 하나님도 없다.’라고 쓴 글이 있다고 하는 데에 쾌재를 부르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더구나, 중국의 유명한 육조(六祖)스님이  ‘부처님이 극락세계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분명히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만일에 사실이라면, 동방 사람은 염불을 하면 서방의 극락세계로 갈 수가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서방 사람은 염불을 하면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귀에 솔깃하고 이치에 맞다 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사실 아미타불을 염하면 ‘서방정토극락세계’에 간다는 말은 불교의 근본 교리와도 많이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불교는 진리를 깨달아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에 이르고자하는 것이 목표이지 극락세계에 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제까지 영혼이니, 저승이니, 천당이나 극락이니 하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5. 텔레파시는 있는가?
  
   영혼이니, 하는 것을 생각하다보니 자연히 우리 인간의 정신세계에 관심이 많아지게 되고 인간의 정신세계가 제가 생각하던 것과는 달리 우리의 인지 범위를 벗어난 다른 정신세계가 있다는 것을 차차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양명수라는 지금은 미국에 이민간 친구와의 우연한 조우가 저에게 많은 걸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이 친구는 영천 출신으로 하양에 살던 저와는 같이 기차 통학도 하였고, 같은 반에서 공부하던 친한 친구였습니다. 이 친구는 서울로 가서 초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대학을 나와서 군 복무를 육사 교수로 중위 계급장을 달고 하였습니다.

   저는 당시 경산군 계당 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서울 간 이 친구가 자꾸 생각이 나고 보고 싶기도 하고 그런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너무 생각이 간절하고 하루 중 이 친구 생각이 자주 나기에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퇴근을 하고 조금 있으니 이 친구가 집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서울서 군 복무를 하고 있던 친구가 이렇게 갑자기 찾아올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입니다. 마침 휴가를 얻어서 고향에 가는 길에 우리 집에 들러서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 같이 가서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이야기도 들려주고 하다가 영천으로 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이 친구가 열차를 타고 하양으로 오면서 계속 제 생각을 하였을 것이고, 자연히 저도 이 친구 생각을 하게 된 모양입니다.

   텔레파시(Telepathy:정신감응)는 통상의 감각적 의사 전달 경로를 이용하지 않고 한 사람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직접 전이되는 현상이라고 정의하지만 이때에 저는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영혼이나 신을 믿지 않던 저도 이러한 초인지적 정신 작용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이러한 쪽에 관심이 많아지게 되어서 결국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에 심취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단순한 인지나 의식 이외에도 무의식이나 잠재의식, 자아, 초자아 등의 정신이 우리 인간에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텔레파시 같은 것이 정말로 있는지 실험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여러 분도 한 번 해보시면 제 말이 맞다 는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거리의 바깥 행인을 볼 수 있는 곳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의 뒤통수를 그냥 바라보면 어쩌다가 한두 명 뒤돌아보게 됩니다. 그런데 빤히 지나가는 사람을 응시하고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느낌에 의해서 뒤돌아보게 됩니다. 아마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정신작용의 무언가가 그 사람에게 이상한 느낌을 갖도록 하였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6. 꿈에 대하여

      지금 말하려는 것은 제가 교직에 있으면서 직접 실험한 것입니다. 1988년 대구동성초등학교 6학년 7반 아이들과 한 실험입니다. 그 전에도 몇 번 시도했는데 이때에 가장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 반 아이들은 60명 정도 되었는데, 저 하고는 아주 라포(상담에서 상담자와 피상담자 간의 인간관계)가 잘 형성 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저를 무척 따랐고 제 말이라면 정말 믿었습니다.

   저는 어느 날 하교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오늘 밤에는 너희들 꿈에 선생님이 나타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매우 놀랐지만 저는 아이들에게 특정 자세를 취하고 누워서 자기 전에 세 번 ‘꿈에 우리 선생님 나타나세요.’라고 말한 후에 아무런 말도 누구와도 하지 말고 그대로 잠에 들면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무슨 방도를 취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날 밤 10시쯤 아이들이 잘 때가 되어서 뜰에 나선 저는 달과 별이 빛나는 하늘을 향해서 무슨 주문을 외우는 듯이 그냥 마음속으로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제가 그들의 꿈에 나타나기를 기원했습니다.

  이튿날, 아이들과 결과를 확인한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60여 명의 아이들 중에 30여명의 아이들이 제가 시키는 대로 하였으며, 그 중 15,6명의 아이들 꿈에 제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사례 발표를 시키니, 한 아이가 발표하는데 괴한에게 쫒기고 있는 그 아이를  수퍼맨인 선생님이 나타나서 구해주었다는 것입니다. 등등 우리들은 재미있는 아이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인간의 정신활동이 그냥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것만이 아닌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이때에 저는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제 친구 한명이 사고로 작고하던 날 아침에 사모님에게 지난밤 꿈이 몹시 안 좋았다고 하면서도 가지 말라고 말리는 사모님을 뿌리치고 약속대로 볼일 보러 갔다가 일을 당하였다고 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돼지꿈을 꾸고 복권을 샀다가 당첨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도 듣습니다. 무언가 꿈이 우리의 앞일을 예고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도 하는 사례들입니다.



7. 운명은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 인간에게는 프로그램화된 운명이라는 것이 과연 있는 것인가 하는데 대하여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대구사범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선배가 와서 제게 하는 말이 이제까지 한 해에 한 명 씩 죽었는데, 아마 너희들도 재학 중에 한 명이 죽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대구 사범학교가 있던 대명 언덕이 옛날에는 공동묘지로 ‘야시골’이라고 불렀는데 묘지를 파헤치고 학교를 지었기 때문이라나요.

   다들 아는 것과 같이 그 후 우리가 1학년 때에 3학년 선배가 한 명 죽었고, 2학년이 되자 역시 3학년 선배가 한 명 죽었고, 우리 동기 중에서도 재학 중에 한 명이 죽었습니다. 십여 년이 흘러 교대 1회 생들과 어울려 놀 기회가 있었는데 우연히 그 생각이 나서 물었더니 그들도 재학 중에 한 명이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동기 중에 일찍 작고한 이영광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해 선배 중에 이름이 비슷한 이광영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김희재란 제 친구와 친하여 나와도 친하게 되었는데, 하양에 애인이 있어서 하양에 들리면 저를 불러내어서는 술 한 잔을 하곤 해서 아주 친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계당초등학교에서 제가 와촌 초등학교로 전근을 가고 이 친구가 후임으로 계당초등학교에 부임을 하게 되어서는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과학주임이 없고 자료계라는 것이 있었는데 우리 둘 다 자료계 일을 맡아서 애를 먹고 있었기 때문에 더 친했습니다. 당시에는 자료계를 맡은 교사들은 여름 방학 동안에 놀지도 못하고 또 교육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둘은 함께 경산 읍에 가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정말 지루한 교육이라 한 명이 달아나면 대신 대답을 해주기도 하면서 길고 지루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교실에서 점심을 먹고는 그대로 오후의 교육을 기다리면서 지루하게 점심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이 친구가 이야기를 꺼내었습니다.

   군에 가기 전 언젠가 달성 공원 앞에 가서 사주를 보았는데, 사주보는 사람이 26살에 요절할 것이라고 말하였다고 하면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제 27살이 되었으니 그 사주보는 사람이 근거 없는 헛소리를 한 것과 이제까지 그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이제는 마음 편하게 살아도 될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런 미신을 믿고 이제까지 살아온 이 친구에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런 것 믿지 말고 힘차게 살아갈 것을 권했습니다. 둘 다 웃으며 그날은 그대로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교육도 무사히 마치고...

   교육을 마치고 사흘 쯤 지나서 하양 길거리에서 우리 5년 선배인 박 선생님을 만났더니 ‘김 선생, 광영이 죽은 것 아나?’하고 말하는 데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함께 교육 받은 지 사흘 밖에 되지 않았는데... 김희재 동기와 함께 그의 집 대구 남산동에 찾아갔더니 홀어머니가 외동아들을 잃고 버선발로 대문까지 울며불며 뛰어나왔습니다. 역시 운명은 있는 걸까요?

   그 이후로 저는 운명이라는 것이 과연 있구나. 그리고 운명대로 되어지는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8 운명은 극복할 수 있는가?

   그러면 이 주어진 운명은 피할 수 없는 것일까요. 우리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없는 것일까요?

   저는 어릴 때에 들었던 이야기처럼 운명도 헤쳐 나가기 마련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옛날 한 나그네가 객지에서 돌아다니다가 어떤 이에게서 관상을 보았는데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죽을 날이 사흘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 사람이 객사를 피하려고 급히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나루터에서 그만 발이 묶이고 말았습니다. 홍수가 나서 물이 불어나 배가 건네어주지를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주막에서 묵게 되었는데 저녁을 먹고 심심해서 강가에 나가서 신세한탄을 하고 있는데.... 마침 무언가 떠내려 오기에 긴 막대기로 건지고 보니 뱀이 살려고 서로 엉켜 있다가, 수백 마리가 강가로 나오게 되니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습니다. 이 사람이 오늘은 주막에서 자다가 죽는 것은 아닌가 하고 누웠는데 이튿날 눈을 떠보니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기에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가서 관상을 보아준 사람을 만났습니다. 아직 죽지 않고 살았으니 헛된 말을 하였다고 하니, 그 사람이 이상하게 여기면서 꼭 사흘밖에 못살 관상이었는데 지금 보니 수명이 몇 십 년은 더 살 수 있겠다면서 그동안 무슨 적선을 한 일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나그네가 뱀을 살린 이야기를 하니 목숨을 그렇게도 많이 살렸으니 당신의 수명이 길어질 수밖에 하고 말하더랍니다.

   이 이야기를 어릴 때에 듣고 그 이후로 저는 운명이란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라는 신념을 갖고 이제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옛날 말에 사람이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른 안쪽에는 자기의 행복과 불행은 거의 운명적으로 타고난 것일 수가 있다고 쳐도, 그 이후에는 그 사람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서 그 사람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지어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9. 그러면 영혼은 있는가?

   그러면 사후에 인간의 육체는 죽어 없어지겠지만 그 정신은 영혼으로 남아 있는가? 하는 물음을 다시 하게 됩니다. 죽어서도 우리 인간의 정신이 영혼으로 남지 않고서는 운명이니 무어라고 말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인간의 영혼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연구를 하여 책으로 출간한 최초의 사람은 미국의 레이몬드 무디(Raymond Moody)교수일 것입니다.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의과대학의 정신과 교수가 자신이 두 번이나 죽었다가 깨어난 경험이 있다면서 그 경험담을 들려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무디는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만 나중에 철학 교수가 되었을 때에 지도하는 학생으로부터 또 똑같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새롭게 조지아 의과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하고, 버지니아 대학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사례(이른바 근사경험 : NDE Near Death Experience)를 150건이나 수집하여 책으로 출판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벌써 수천 건의 사례를 수집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시카고대학의 퀴불러 로스(E. Kubler Ross)교수였습니다. 결국 로스 교수가 서문을 쓰고 무디 교수가 1975년에 책을 출간하였는데 이년 뒤인 1977년에 다시 사후 생에 대한 회고(Reflections on Life after Life)라는 책을 발표했습니다. 이후 1998년 5월 10일 이후 미국 네바다 대학 교수로 재직하게 됩니다.

   근사경험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 죽었을 때는 캄캄한 어떤 터널 같은 곳을 빠져나간다. 그곳을 빠져 나오면 자신의 신체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것이 보인다. 그래서 ‘이상하다. 내가 왜 이렇게 누워 있을까? 내가 죽었는가’ 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는 아주 밝은 광명이 나타난다. 그 광명 속에서 자기가 지나간 한 평생에 걸쳐 겪은 모든 일들이 잠깐 동안에 나타난다. 그 뒤에 자기가 아는, 이미 죽은 사람들이 나타난다. 서로 위로도 하고 소식도 묻고 이야기도 나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영혼은 이 방, 저 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의사들이 자기를 살리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이라든지 가족들이 장사 지낼 의논을 하는 것이라든지 또는 다른 방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모두 볼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눈앞에 보이는 그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하려고 해도 말을 할 수가 없다.

   여기에 대한 반론으로는 사람의 신체 중에서 뇌세포는 맨 나중에 소멸하므로 아직 죽지 않은 뇌세포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환상일 뿐이지 죽은 뒤에 실제로 어떤 활동체가 있어서 활동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은 이는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 있으면서도 나중에 죽었을 당시에 있었던 일들(다른 이들이 한 행동, 말)을 그대로 말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다른 방에서 일어난 일들도 그대로 알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백 명이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사실로 미루어볼 때 사람이 죽고 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몸뚱이는 죽었어도 무엇인가 활동하는 활동체가 있어서 보고 듣는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죽었다가 깨어났다고 해서 누구나 이런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 어떤 사람은 아주 캄캄하여 아무 기억이 없다고도 하는 가 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의 정신은 육체가 죽고 없어져도 영혼으로 남아 있다고 믿어도 될 듯합니다.  앞에서 논의할 때에 저승사자가 데려가더라는 말은 믿지 못하던 저도 이런 명백한 증거 앞에서는 영혼의 존재를 부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과학적 명제를 참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복제 가능(duplicable)하여야 합니다. 즉, 한 과학자가 연구한 똑 같은 조건으로 다른 과학자가 실험 관찰하였을 때에 같은 결과가 나와야합니다. 이것은 수천 건 같은 결과가 나왔으므로 당연히 참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일찍이 벤자민 프랭클린도 이 문제에 대해서 언급한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것도 완전히 멸해버리는 것은 없다. 그것을 관찰할 때, 이를테면 한 방울의 물조차도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관찰할 때, 나는 우리 인간의 마음이 죽음과 더불어 소멸해 버린다고는 상상할 수 없다. 전지전능하신 자비로운 만물의 창조주께서 지금 존재하고 있는 무수한 마음들이 매일 매일 없어져 버림으로 인해 새로운 마음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야하는 고역을 치르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따라서 나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 나는 이런 모습으로 또는 저런 모습으로 이 세상에 상주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면 이 영혼이라는 것이 인간만 있는 것일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각 종교마다 신념을 달리하게 됩니다. 요약하면 기독교에서는 인간만 영혼이 있다고 봅니다. 이 지구의 모든 것은 여호아가 인간을 위해서 만들어둔 것으로 유일하게 영혼을 가진 인간이 모든 지구 자원을 차지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불교에서는 모든 살아있는 것은 영혼이 있다고 봅니다. 심지어 돌이나 물 같은 무생물도 불심이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살생을 삼가고 모든 살아있는 것을 경외할 것을 가르칩니다.

   여러분은 영혼이 있다고 믿습니까? 그리고 영혼이 있다면 인간 이외에 동식물도 영혼이 있다고 봅니까?

   현대 과학은 동물도 인간과 같이 음악을 감상하고, 심지어는 농작물도 좋은 음악을 들려주면 생산량이 증가한다고 밝혀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개나 소도 영혼이 있는지는 아직까지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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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제목의 물음 중에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을 한 것 같습니다.  우리 인간은 육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신이 중요하고 그 정신은 죽으면 영혼으로 남는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그래서 종교에서는 우리 인간의 육체를 정신이 잠깐 머무르는 영혼의 집이라고 합니다.

  

10.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1)

   만일 인간이 죽어도 그 영혼이 남아 있다면, 인간의 영혼은 인간의 출생과 함께 이 세상에 생겨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죽지 않는 것은 태어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 세상에 있는 영혼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이지 태어나거나 죽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우리 영혼이 죽어서 천국이나 극락이나 지옥 혹은 환생을 하였다고 하면, 그곳에서는 우리를 보고 지금의 생에서 그리로 왔다고 하지, 새로 탄생했다고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어린애가 태어나면 우리는 어딘가에서 영혼이 이리로 왔다고 보아야하지 않을까요?

   성경에 어떻게 씌어 있다느니, 불경에 이렇게 씌어 있다느니 하고 종교적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라 연구소에서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누구나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그러한 연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현재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미국에 3곳, 영국에 2곳, 네덜란드에 1곳 그러한 연구소가 대학 부설로 마련되어 있고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University of Virginia, Princeton University, University of Arizona, University of Hertfordshire, University of Edinburgh, University of Amsterdam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의 영혼은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에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전생에 대한 몇 몇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아래에 소개할까 합니다.


(모레이 번스타인의 연구)

   '전생요법' 또는 '역행최면'의 시초가 된 사건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모레이 번스타인 Morey Bernstein)

   1950년 어느 가을, 미국 콜로라도주 프에블로의 유명한 최면술사 '모레이 번스타인'이 우울증에 빠진 중년 '루스'부인을 치료하기 위해 최면 요법을 실시했습니다. 현재 그녀의 나이로부터 한해, 두해 전으로 점점 내려가도록 암시를 하여 결국 아주 어린 시절까지 기억을 하게 했습니다.
   이때까지는 별 다른 문제없이 최면 치료가 잘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루스부인이 '괴로워...어둡다...숨이 막혀... 왜 이렇게 좁지! 빨리 꺼내줘요, 빨리 여기서!' 라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번스타인은 경악했습니다. 처음 당하는 기묘한 체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최면심리학의 지식으로 이것은 루스 부인이 그녀 모친의 태내를 통과하여 태어나려고 할 때의 기억이라는 것을 곧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매우 큰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더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더 앞의 기억이 나올지 모른다... 그것이 무엇일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순간적으로 모든 기술을 이용해서 그녀를 전생으로 유도했습니다. 잠시 후 번스타인은 강력한 쇼크를 느꼈습니다.

   그녀는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섹시하고 빠른 말투로 대답했습니다.
   '누구? 누구셔요? 나를 루스라 부르다니? 농담하시는 군요? 난 루스가     아니랍니다. 나는 브라이드...브라이드 머피예요.'
라고 한 것입니다. 번스타인은 그 자리에 자신도 모르게 우뚝 일어서고야 말았습니다.
  
   그는 뭔가 잘못됐다싶어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으나 냉정을 되찾고 그녀에게 자신은 어디에 있고, 주위에 보이는 것을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돌바닥, 길이 계속 이어진 거리의 풍경, 거리입구에 '코크'라고 쓰인 표식, 거리를 달리는 쌍두마차 그리고 친하게 지내는 이웃집 부인의 이야기, 교회 생활, 남편의 얼굴과 복장 등등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말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더욱이 헛소리처럼 계속 지껄여대는 그녀의 말투는 20세기 중엽 아메리카 서부의 영어가 아니었습니다.  영어인 것은 분명했으나 번스타인 자신은 그때까지 들어보지도 못한, 어딘지 고풍스러운 아주 먼 지방의 방언 같은 것이었습니다.

   번스타인은 그녀를 최면상태에서 깨운 후 정신이 드는지?, 조금 전에 말한 것이 기억에 나는지? 를 물어보니 루스 부인은 피곤한 듯 고개를 저으면서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최면상태에서 말한 것을 루스부인에게 말해주니 루스부인은 웃음을 터뜨렸고, 화를 내면서 다시 현대 서부의 발음으로 돌아와 자신을 놀린다고 말을 했습니다.  
   당시 이 사건은 전 미국에 어마어마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번스타인은 엄청난 흥분 속에서 그녀가 말한 단어들과 연관되는 지형을 찾아 나섰고, 드디어 아일랜드 한 구석에 '코크'라는 작은 마을을 발견했습니다.

   번스타인이 직접 가서 확인한 결과, 거리의 풍경이나, 남아 있는 옛날식 발음 등이 일치했고, 더불어 당사자인 '브라이언 머피'는 그곳에 살고 있는 노인들에 의해서 그들이 아주 어렸을 적 머피라는 잡화 상인의 아내였음이 밝혀졌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역행최면 상태에서 말한 당시의 생활환경에 관한 내용과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사건은 당시 미국의 98개 신문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게 되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한편, 모레이 번스타인은 그 실험 및 확증에 대한 내용을 ‘브라이드 머피를 찾아서’라는 책으로 1954년에 출간했습니다.
  


11.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2)

   (아널 브록샴의 연구)

   20세기 중반부터 유럽과 미국 일대에 불어 닥친 심령과학의 연구 붐은 상당히 많은 실험적인 자료를 거쳐 다양한 방면에서 심령현상에 대한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역행최면을 통해 수백 사례의 전생과 현생의 관계를 탐구했던 '아널 브록샴(Arnall Broxham)'의 연구결과는 지금까지도 상당히 고전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일명 브록샴 테이프라고 불리는 그의 실험 테이프에는 최면을 통한 연령역행으로 20년 동안 약 400명의 전생을 조사하여 녹음한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그 테이프는 아직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여러 가지의 전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브록샴 테이프의 진위를 밝히기 위해, 테이프에 녹음된 사실과 지명을 찾아 1년 동안 답사하고 고고학, 역사학, 심리학 관계의 학자들의 검증까지 거쳤던 영국 BBC 방송국의 두 기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거짓임을 입증하기 위해 1년 동안이나 조사하였습니다. 그 결과 브록샴 테이프의 전생조사는 조금도 틀림이 없는 사실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이후 이 조사 작업은 BBC에서 특집으로 방송되었고, 1976년에는 ‘한번 이상 사는가?’(More Lives Than One?)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다음에 그 중 한 사례를 올려 여러 분이 읽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12.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3)

  (알렉산더 캐논(Sir Alexander Cannon)의 연구)

   '알렉산더 캐논 박사'는 1382명에 대한 전생자료를 수집하여 ‘잠재력The Power Within)’이란 책으로 출판했는데 이것을 '캐논 보고서'라고 합니다. 이 보고서 속에서 캐논 박사는 전생과 현생의 인과관계를 규명하여 주목을 끌고 영국 여왕으로부터 작위를 수여 받았으며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미국 학술원 지도교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알렉산더 캐논>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경우 아무리 치료를 해도 낫지 않는 병이 있는데, 역행최면을 통해 그 사람의 전생을 조사해보면 그 원인이 전생으로부터 넘어온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치료했을 때 병이 고쳐졌습니다.

    이른바 이런 치료법을 '전생요법'이라고 하는데 사례를 들면, 어떤 사람이 물만 보면 겁을 냈습니다. 바다를 구경한 적도 없고 물에 빠져 고생한 적도 없는데 조그만 시냇물만 보아도 겁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심리치료를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전생을 조사해보니 그는 전생에 지중해를 내왕하는 큰 상선의 노예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잘못을 저질러서 쇠사슬에 묶인 채 바다 속으로 던져져 빠져죽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받은 두려움과 충격이 현생에까지 이어져 원인 모르게 물만 보면 공포에 질려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원인에 의거해 잠재의식 속의 스트레스를 해소해 나가는 치료를 하니, 그의 병이 고쳐졌습니다.

   그리고, 뛰어난 재능을 지녔으나 불행하게도 태어날 때부터 두 눈이 자유롭지 못한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었는데, 그의 전생을 알아보니 그는 전생에 페르시아 군사였는데 불에 달군 쇠젖가락으로 적의 눈을 찌른 적이 있었습니다.

   또 병적으로 내성적이고 고독한, 한 명의 친구도 없는 어느 여학생의 경우, 그녀는 전생에 프랑스의 귀족으로서 거만하기 짝이 없고 누구에게나 냉혹하게 굴었습니다. 현생에서의 고독과 대인공포는 이 냉혹하게 굴었던 과거의 화려함이 반대로 나타난 것입니다.

  전생에 굉장한 플레이보이였거나, 창녀를 직업으로 했던 여자가 현생에 여자로 태어나게 되면, 그들은 보통 애를 갖지 못하는 불임 증세를 많이 보인다고 합니다. 즉 창녀 생활을 하면서 '혹시 애를 갖게 되면 어쩌나?'하는 강박관념이 현생에서도 그대로 남아 육체에 작용하여 반영된 것이라고 합니다.


13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4).
  
   (이안 스티븐슨의 연구)

   이러한 전생 기억에 대해 가장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은 미국의 버지니아대학 이안 스티븐슨(Ian Stevenson)교수입니다. 1960년에 나온 그의 논문을 읽고 제록스 복사기 회사의 Chester Carlson이 1968년 사망하면서 버지니아 대학 정신과 소속의 인지연구소에(1967년 설립)에 100만 달러를 기증하였습니다. 그는 세계 각국에 연락 기구를 조직하여 전생기억을 가진 아이나 어른이 있으면 학자들을 보내어 사실을 조사 확인하고 수년 동안에 600여명의 자료를 수집하여 ‘윤회를 나타내는 스무 가지 사례(Twenty Cases Suggestion of Reincarnation)’라는 책으로 출판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이라는 제목으로 상, 하 두 권이 송산출판사에서 1985, 1986년에 각각 출간되었습니다.

   특히 2000년에는 전문 의학 학술지인 Medical hypotheses에 The phenomenon of claimed memories of previous lives: possible interpretations and importance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게재하여 과학적인 접근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전문 학술 논문이므로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참고문헌이 일일이 제시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가 조사한 사례들 중 하나를 소개하면 이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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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나틸리카는  1956년 2월 14일  스리랑카(실론)의 헤두나훼와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두 살이 조금 지나면서 전생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종합해 보면 대략 이런 내용이다. 
   "아버지는 우편배달부다.  어머니는 뚱뚱하다. 다아다사라는 형이 있는     데 개에 물린 적이 있다.  누이 한 사람과 함께 학교에 다녔다. 어머니     는 자주 땔감을 샀다." 
   어느 날 그녀의 집에 마을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약 30km떨어진 탈라와켈레에 갔다 온 이야기를 했는데, 그 중에서 돈을 주고 땔감을 산다는 얘기는 전에 그나나틸리카가 말했던 것과 같았다.   그래서 이 마을사람의 얘기를 듣고 그녀의 아버지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뿐만 아니라 이 마을 사람의 이야기가 그나나틸리카를 강하게 자극한 듯했다. 그때부터 더욱 상세하게 전생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전생에 탈라와켈레에 살았다. 거기에는 야자나무가 없다. 학교 갈    때 기차를 타고 간다. 누나인 수두아카도 학교에 간다." 
   그나나틸리카가 네 살 때에 아버지는  그를 데리고 탈라와켈레에 찾아갔다.  전생의 집이 있었다는 우체국까지는  잘 찾았는데 막상 그 집은 찾지 못했다.  그곳은 건물이 없는 빈터였다. 그녀가 전생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전해들은 데라 스님은 전생 발언을 토대로 하여 그녀의 전인격(前人格)을 찾아냈다. 그는 탈라와켈레에 살았던 소년으로, 틸레케라트네라고 했고 1954년 11월 9일 열세 살로 죽었다. 
   이런 소문을 전해 듣고서 텔레케라트네가 다니던  중등부의 교사가 그녀를 찾아왔다.  그나나틸리카는 금방 그 선생님을 알아보면서  이름도 기억해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는 한 번도 꾸중을 듣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을 한 번도 야단친 일이 없는 특이한 교사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선생님에게 말했다.  "이 아이는 부처님이 고행에서 성불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아주 상세하게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도 이야기합니다." 그이야기는 이 선생님이 학교에서 가르친 것이었다. 
   또 그나나틸리카가  "기차를 타고 학교에 통학했고 긴 터널을 지나갔다" 고 한 전생 발언도  이 선생님의 방문으로 입증되었다. 틸레케라트네는 햇튼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학교 가는 길에 실론에서 가장 긴 터널이 있어서 그는 학교를 다니느라 하루에 두 번 이 터널을 통과하였던 것이다. 
   그녀는 또 아직 보지도 못한  햇튼 시(市)의 거리 모습을, 특히 학교와 역을 중심으로, 정확히 그려보였다. 또 그녀의 오빠가 어느 큰 행사 때에 춤을 보이러 탈라와켈레에 간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 행사는 실론의 독립을 축하하기 위한 영국 여왕의 방문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때에 여왕이 타고 있던 기차의 창 너머로 엘리자베스 여왕을 본 일이 있다고 말했다. 또 이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생전의 틸레케라트네는 인간은 죽어서 환생하는가를 묻고  환생할 때에 남자가 여자로 태어날 수도 있는가를 물었다고 한다. 
   1961년 초 그나나틸리카가 다섯 살일 때  그녀는 다시 틸라와켈레에 왔다.  그녀는 부모와 스님, 그리고 선생님들이 모인 곳에서 전생 가족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는 이들을 모두 알아보는 것이었다. 이 때 특기할 것은 틸레케라트네가 좋아했던 누이에게는  특별히 친밀감을 보이고, 자기와 사이가 좋지 않아 불상(佛像)을 깨뜨린 형에게는 반감을 보인 것이다.  이것은 모두 틸레케라트네의 전생의 태도와 상응하는 것이다. 
   그 후 열네 살이 될 즈음 그녀는 극히 평범한 소녀가 되었다. 머리 모양이나 체격 등 어디로 보나 남자의 환생이 아니라 정상적인 여자 아이였다. 그러나 언제나 파란 하늘 빛깔을 좋아했다. 그것은 틸레케라트네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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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슨 교수의 전생기억에 나타난 사례들에서 몇 가지 특징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대개는 태어난 지 두서너 살이 되면 전생을 말하기 시작하다가 다섯 살에서 여덟 살이 되면 전생기억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2.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은 어른스러운 태도를 보이거나 위엄과 지혜를 갖는 등 일반적인 아이들과는 그 행동이 다릅니다.
   3. 자신의 새로운 육체의 생소함을 토로합니다.
   4. 전생에서의 죽음의 순간에 대한 기억이 가장 생생합니다. 대개는 죽음을 가져다준 환경이나 물건에 두려움을 나타냅니다.
   5. 전생에 살던 곳에 가면 사람과 환경의 변화를 알아봅니다.
   6. 새로 태어날 어머니의 꿈에 예고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7. 어머니의 임신 중에 비정상적인 식성을 갖는 경우도 있습니다.
   8. 배우지 않는 기술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전생에 대한 연구는 역행 최면과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에 대한 조사로 이루어진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가 수천 건이 넘고, 그걸 일일이 검증을 하였으나 부정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들은 아마도 전생에서 환생해서 온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14.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우리가 전생에서 환생하여 지금의 인생으로 왔다지만 그러면 앞으로 어디로 가는 걸까요? 과연 내세는 있는 것일까요? 여기에 대한 답을 찾기 전에 먼저 전생에 대해서 더 알아보겠습니다. 이제까지의 전생의 연구 중에서 가장 여러 차례의 전생을 기억해낸 사람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앞에서 브록샴 테이프에 기록된 사례를 나중에 소개한다고 하였는데 그 중 가장 특기할 만한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제인 에반스라는 여인의 기록이 참으로 놀라운 것인데 이 여인은 최면 상태에서 6번의 전생을 기억해 내었습니다. 물론 더 기억해낼 수 있었지만 6번 이후에는 더 이상 최면에 들기를 원하지 않아서 그대로 끝낼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이 여인은 7번의 생애를 가진 여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1. 서기 286년 경 로마 제국 통치하의 영국에서 살았던 통치자 가정교사의 아내로서의 전생
   2. 1190년에 사망한 영국 요크시에서 유태인 여성으로 산 전생
   3. 1451년에 사망한 프랑tm 부르스 시에서 꿰르 씨의 하녀로서의 전생
   4. 1451년부터 1536년까지 산 스페인 케더린 공주의 시녀로서 산 전생
   5. 앤 여왕 재위 시(앤 여왕은 1665년에서 1714년까지 살았음) 런던에서 바느질 품팔이 소녀로 산 전생
   6. 1920년 무렵에 사망한 미국의 메릴랜드 주 수녀로서의 전생
   7. 1939년에 탄생하여 제인 에반스로 산 금생

   이렇게 기록하고 보면 수학에서 말하는 외삽법에 의하여 이 여인이 죽으면 8번째로 인생을 다시 살 거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우리는 죽으면 그 영혼이 다시 다른 인생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이것이 윤회인 것입니다. 인간은 죽으면 그 혼이 있어서 윤회를 하게 된다. 과연 이것이 믿을 만한 것일까요?

   우선 에반스 부인처럼 최면으로 정신없이 지껄인  내용을 두고 전생이니 어쩌니 말할 수 있느냐 하는 것부터 검증해야하겠지요. 이 것 외에도 각 연구소에서는 전생을 말하는 어린이나 역행최면으로 말한 내용을 하나하나 모두 검증해 나갔습니다. 저는 이 여인의 여섯 번의 전생을 모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만 에반스 부인이 요크셔에서 12세기에 레베카라는 유태인 여성으로 산 내용을 검증한 것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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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반스는 최면 상태에 들어서 레베카라는 이름의 유태 여인이 되었습니다. 레베카는 요크대성당의 외부를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서기 1189년 유태인인 레베카는 과일과 채소를 사느라고 인근 시장에서 장을 보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이름은 죠셉으로 돈 많은 고리대금업자이며, 나이가 사십대인 이들 부부에게는 열여덟 살 난 아들 죠셉과 열한 살 난 딸 레이첼이 있었습니다. 레베카의 가족은 커다란 돌집에 살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유태인 부호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거주하는 요크 시의 북쪽이었다고 합니다. 이 무렵의 역사적인 기록으로는 그러한 것에 대한 확실한 사실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다만 유태인 공동체에 속했다는 소수의 유태인 이름이 전해질 뿐입니다.
  
   레베카는 할아버지가 지중해에 위치한 사이프러스 섬 출신이고 나머지 가족들은 영국에서 출생했지만 영국인은 아니었으며 사회에서 버림받은 계급이었다고 자기의 혈통을 설명했습니다.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당시 체스터, 링컨, 런던 등지에서 유태인을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나자 불안한 나날이 시작되었습니다. 레베카는 플란타지니트 왕가 출신인 헨리 왕과 유태인의 관계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서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유태인들은 법정에서 재판 받을 때 헨리 왕으로부터 보호를 받았고 왕은 그 보답으로 돈을 지불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레베카는 왕이 서거한 해에 일어난 사건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유태인을 이단자로 몰아 위협하는 기독교인들에 관한 레베카의 진술은 제3차 십자군 원정을 초래한 사건을 사실상 설명하고 있습니다. 반 회교 감정은 물론 반 유태인 감정이 한창 고조되고 있던 그 무렵의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군중들이 이단자로 몰린 유태인을 향해서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살인과 폭동이 뒤따르게 되었고 유태인은 ‘그리스도의 적’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레베카는 남편인 죠셉에게서 돈을 빌려간 메베리제와의 재판이후 몹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문단속을 철저히 하는 것은 물론이고, 밤에 돈을 받으러 갈 때에는 유태인이라 표지를 위해 달게 되어 있는 노란 뱃지를 떼고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레베카가 말한 메베리제라는 사람입니다. 레베카는 당시 연대기 편자가 ‘유태인 학살의 주모자’라고 기록한 메레비제라는 사람에 대해 언급하는 것 같습니다. ‘메레비제’와 ‘메베리제’는 서로 거의 비슷한 이름입니다. 이 사람은 후일 유태인 학살에 가담했다는 죄목으로 벌금을 물고 유형에 처해졌다고 전해집니다. 메레비제라고 불리는 요크 시의 이 미미한 귀족은 유태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었으므로, 그 돈을 갚지 않으려고 그들을 살해함으로써 빚을 청산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위급한 상태가 계속되자 레베카의 가족들은 성을 빠져나와 성당에 피난처를 마련하여, 성당 밑바닥에 있는 지하실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레베카의 가족들이 숨은 곳은 요크성 성문 밖에 위치한 조그마한 성당이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레베카는 딸 레이첼을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레베카 역시 성당 안의 지하실에서 살해당했습니다.
  
   레베카의 말을 담은 테이프를 요크대학교의 역사학 교수인 도브슨 박사가 들었는데, 그는 ‘1190년의 유태인 대학살’에 대한 논문을 쓰기도 한 사람입니다. 도브슨 교수는 레베카가 사용한 단어는 중세영어라기 보다는 12세기에 쓰던 영어라고 밝혔습니다. 또 레베카의 이야기는 그 사건이 일어난 당시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 일치한다고 했습니다. 도브슨 교수는 레베카가 성에서 성당으로 도망했다는 설명을 듣고 그 성당이 어느 성당인지 찾아내고자 했습니다. (그 도시에는 약 40개가 넘는 성당이 있었는데 지금도 약 반수 가량이 형태가 조금씩 달라진 채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도브슨 교수는 성모마리아 성당이 레베카가 최후를 맞았던 곳이라고 짐작하게 되었는데, 그 성당은 레베카가 말한 것처럼 성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놓여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틀린 점이 있다면 대성당 하나를 제외하고는 어느 성당도 지하실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975년 9월, 성모마리아 성당을 수리하던 한 일꾼이 이  성당에서 예배실처럼 보이는 지하실을 발견했습니다. 일꾼은 석굴과 둥근 천정 등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 건물이 로마풍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는데 그것은 서기 1190년 이전에 유행했던 양식이라고 합니다
  
    레베카는 말하던 도중에 군중들이 이단자라고 유태인을 몰아세우며 위협을 하던 광경을 생생하게 떠올리는 듯, 두렵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유태인들은 자기의 자식이 남의 손에 살해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스스로 죽이기도 했다고 레베카는 말했습니다. 이는  ‘자비 살인’이라고 표현되고 있는데,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요크대학살 당시 일어났던 일 중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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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전생 기억을 기록한 학자들은 이를 검증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것이 단순히 최면 상태에서 횡설수설 지껄인 이야기가 아님을 검증할 수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전생이 있고, 앞으로 다시 내세가 있을 것이므로 인간의 영혼은 윤회를 한다고 믿을 만 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15. 윤회는 믿을 수 있는가?
  
   그러면 과연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얼마나 윤회를 믿고 있을까요?

   저는 처음에 인디아의 힌두교 신자들이 윤회를 믿기 시작하여 부처님이 인간의 영혼은 윤회를 한다고 세상에 편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지구상의 많은 종족과 종교인들이 윤회를 예로부터 믿어온 것 같습니다.
  
   기독교의 발상지인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사람들은 윤회를 믿었고, 예수님이 출현한 뒤로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윤회설을 믿었다고 합니다. 그노시스파와 마니 교도들과 같은 강력한 종파들이 그러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서기 553년 바티칸공회는 교황의 승인 없이 윤회설을 이단이라고 공표하였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천주교 신학자들은 제5회 바티칸공회의 파문15조의 합법성 여부에 대하여 자주 논란을 벌이고 있는데, 그것은 당시 교황은 파문 15조를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조치로 말미암아 6세기경부터 전 유럽에서 윤회설을 믿는 사람을 이단자로 몰아 화형에 처하는 종교적 박해가 일기 시작하였으며 이로 인해 기독교와 윤회사상은 결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플라톤은 윤회사상을 믿었다고 하며 플라톤 식의 윤회사상은 기독교의 한 파인 Cathar에 의해 13세기까지 신봉되어 왔다고 합니다. 이 Cathar파는 이탈리아, 프랑스의 남서부지역에서 세력을 떨치다가 13세기에 로마카톨릭에서 독립해 나갑니다. 그 당시 교황이 Innocent 3세였는데 가만히 둘 수 없어 프랑스 북부에 있는 군사들을 동원해서 싹 쓸어버렸다고 합니다. 아주 잔혹하게. 그이후로 중세 기간 동안 로마카톨릭에서 윤회사상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지금 현재 세계의 여러 나라 여러 종족에서는 윤회 사상을 어느 정도로 믿고 있을까요?

   정확하게 조사된 통계 자료는 없지만 1968년에 서유럽 8개국에서 조사된 바에 의하면 평균 18%의 사람들이 윤회를 믿고 있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네덜란드 10%, 서독 25%, 프랑스 23%, 영국 18% 등인데 미국은 1982년과 1998년의 조사에 의하면 20%에서 27%의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1990년도의 조사에서는 독일 26%, 프랑스 28%, 영국 29%로 나타나 윤회를 믿는 사람의 비율이 조금씩 높아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프랑스의 종교 조사에서 1966년에는 응답자의 80%가 로마카톨릭이었는데  1990년에는 58%가 로마카톨릭이라고 대답하였으며 39%가 무종교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윤회를 믿는 사람은 무종교 그룹에서 39%가 윤회를 믿는다고 응답한 반면 로마카톨릭 신자 중에서는 34%가 윤회를 믿는다고 조사되었습니다. 1978년 영국의 예를 보면 웨일즈지방의 로마카톨릭 신자중에 27%가 윤회를 믿는다고 조사되었습니다. 이로 미루어보아 윤회 사상은 종교와는 무관하게 두루 신봉되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에서 발간한 자료에 의하면 불교적인 윤회 전생을 믿는 비율은 북경 24%, 동경 36.6%, 서울 39.6%, 제주 51.3%로 나와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제주도 사람들이 윤회를 많이 믿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 중에는 윤회를 믿고 있구나 하고 생각되어지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단지 윤회라는 말이 불교에서 쓰는 말이라서 거부감을 갖고 있을 뿐이지 인간의 영혼이 어디에서 왔고 또 우리가 죽으면 어디로 간다는 윤회 사상을 깊이 믿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물의 순환이라고 해서 물은 증발하여 구름이 되었다가 비가 되어 땅으로 내려오고...바다에 이르기도 하지만 다시 증발하여 구름이 되었다가... 이렇게 순환하고 있습니다. 자연계에는 거의 다 이런 현상이 있는데... 예를 들어서 탄소, 질소 등 원소만 하여도 계속 순환하고 있는 것이며, 모래가 흙이 되고 다시 물에 흘러가서 쌓여서 암석이 되고.... 등등 순환되고 있는 모든 물질 세계를 보면 우리 영혼도 윤회를 해서 나고 죽고 다시 나고 죽고 하리라고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과연 영혼은 있고, 영혼은 윤회를 한다고 믿을만합니까?



16. 윤회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그러면 윤회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대략 기독교인은 윤회를 믿는 사람보다 안 믿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고, 불교도들은 윤회를 믿는 사람이 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윤회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하고 물으면 두 종교인들은 각각 다른 대답을 하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나 회교 같이 절대 신이 있다고 믿는 종교에서는 이 세상은 여호아나 알라, 혹은 옥황상제나 제우스 같은 전지전능한 신이 존재하여 이 세상을 주관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아담의 원죄를 타고난 인간은 원래 사악하기 때문에 여호아의 죄 사함을 받아 거듭 태어나야 죽어서 그 영혼이 이 힘든 세상에서 벗어나 천국에 갈 수가 있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윤회를 믿을 때에도 이 윤회는 전지전능한 절대신(그것이 여호아든, 옥황상제든, 알라든)이 있어서 이 절대 신이 인간의 윤회를 주관한다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불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절대 신을 숭배하지 않기 때문에 이와는 전연 다른 윤회관을 갖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고해라고 해서 이승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기독교와 같지만 인성을 기독교와 같이 성악설에 기초를 두지 않고 성선설에 기초를 두고 있는 점이 다릅니다. 인간은 누구나 불성을 가진 착한 존재이므로 깨쳐서 이 고해의 언덕에서 저 언덕(피안)으로 가서 해탈에 이르면 나고 죽고 나고 죽는 윤회의 고리를 벗어날 수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저 언덕에 가는 방법이 6가지가 있는데 이것을 6바라밀이라고 하며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의 6바라밀 중에 반야(지혜)바라밀을 가장 높이 봅니다.

   그러면 불교에서는 윤회가 어떻게 이루어진다고 믿느냐하면 바로 ‘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라 윤회가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흔히 불교에서는 인간이 짓는 원인이 되는 일을 ‘업(Karma)’이라고 하는데 선업을 많이 지으면 좋게 태어나고, 악업을 많이 지으면 나쁘게 태어난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원인이 없이 결과가 없듯이 어떤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렇게 된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오른 손이 병신으로 태어났는데.. 알고 보니 전생에 그 손으로 흉기를 들고 살인을 했다고 합니다. 앞의 예를 든 대학 부설 연구소에서 연구한 수많은 전생 기록들을 보면 비록 정확하게 우리 생각과 일치하지는 않으나 전생의 업보에 의해서 현세에 그렇게 태어난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많은 부분이 바르고 착한이가 천국에 가고 사악한 이가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였지 그 반대로 이야기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 날 때부터 이 인과 응보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죄 지은이가 천국에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돌을 던지면 유리창이 깨어지듯이 우리가 지은 업보에 의해서 내세에 그렇게 태어난다면 그러한 법칙은 누가 있어서 관리하는 것일까요? 전지전능한 어떤 신이 있어서 이러한 자연 법칙을 주재할까요? 아니면 단순히 자연 법칙처럼 이러한 인과 응보의 법칙에 의해서만 윤회가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저는 아인슈타인이 ‘우주는 달걀처럼 생겼다’라고 하였다는 데에 거부감을 가졌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그 달걀의 바깥은 어떠할까 하는 것이 저의 의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스티븐 호킹 박사의 책을 읽어보니 공간이 휘어졌다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즉, 우리가 우주를 향해서 직선으로 똑바로 날아간다고 하면 한없이 가서 달걀처럼 생긴 우주의 끝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마치 지구의 위를 똑바로 나아가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처럼. 그런데, 이 책을 읽을 때에는 아리송하게 알듯 모를 듯 하드니 책을 놓고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저에게는 개념도 잡히지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우주에는 우리 인간의 머리로는 개념도 잡히지 않을 만큼 불가사의한 일들이 많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윤회도 우리 인간의 사고 범위로는 개념이 잡히지 않는 하나의 현상이 아닐까 하고도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러한 경우 즉, 불가사의한 현상이나 두려운 현상에 대해서 인류는 원시시대부터 어떤 신의 존재에 의해서 이러한 현상이 생긴다고 믿어왔습니다. 천둥이 제우스의 노여운 고함이라고 믿었던 그리스인들이나 무지개가 여호아의 언약의 징표라고 믿었던 이스라엘 사람들(구약성서 창세기 9: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처럼 옛날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거나 두려운 자연 현상은 신의 짓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여러 분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불교에서 말하는 단순한 인과응보의 규칙에 의해서 윤회가 일어난다고 봅니까? 아니면 여호아나 알라나 옥황상제 같은 절대적인 어떤 신이 있어서 주재를 한다고 봅니까?



17.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을 옛 사람들은 그렇게도 원했던 것 같습니다.

   우선 기독교에서는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아 주의 종으로써 착하게 살면 천국에 태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다시는 윤회를 하지 않게 되겠지요.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따라 힘써 정진하면 드디어 이 고해를 건너 피안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즉, 해탈, 열반에 들게  되겠지요.  흔히 불교에서 하는 말로는 윤회를 하다가 한 번 인간으로 태어나기도 힘들고(불교식 윤회관에 의하면 인간은 다른 동물과 더불어 함께 윤회를 하게 되므로), 인간으로 태어나도 부처님 세상 (지금처럼 부처님 태어나신지 3000년 정도 되어서 그 가르침이 전해지고 있는 세상) 에 태어나기도 어려우므로 지금 이때에 크게 용맹 정진하여 해탈에 이르도록 힘쓰라고 합니다.

   저도 처음으로 영혼이 있고, 이 영혼이 윤회를 한다고 믿게 되었을 때에 머리 깎고 중이 되어 절로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에 윤회의 고리를 끊는 해탈에 이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옳지 않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옛날 부처님이 태어나신 카필라 성에서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모두들 머리를 깎고 중이 되려고 하여서 임금 자리를 차지할 사람이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억지로 권해서 임금을 하도록 하면 곧 그만 두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는 바람에 결국 부처님 입적하시기 전에 그 나라가 망하게 되고 말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은 정말 고해이고, 윤회의 고리를 끊어야만 할까요? 우리가 잘 아는 카네기 같은 사람의 전기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는 말년에 자기가 이룩한 이 지상의 천국을 두고 죽게 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또 사범학교 때에 읽은 벤자민 프랭크린의 자서전을 읽으면, 자기가 살아온 일생을 하나도 수정하지 못한다고 해도 다시 한 번 더 살고 싶다고 썼습니다. 이들은 성공한 사람들이라 자기가 산 이 세상을 고해로 보지 않은 모양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모임에서 제가 ‘요즈음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 옛날 임금들 보다 조금 나은 것 같다.’라고 말하자 다른 이들이 훨씬 더 났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의식주 생활에서부터 여러 가지를 다 따져 보아도 과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것이 옛날 임금보다는 훨씬 더 잘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고해는커녕 살만한 세상이 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가 죽어서 다시 태어나게 될 이 세상은 지금보다도 더 좋은 세상이 되어 있다고 해도 틀림없지 않을까요? 만약 그렇지 못할 염려가 있으면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이 사회를 좀 더 아름답고 좋은 사회로 만들어가도록 노력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저는 이 윤회를 믿고부터 마음이 편안하고 앞으로 제가 죽어도 다시 태어날 것을 생각하니 이 세상이 더 즐겁고, 앞으로도 더욱 즐거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도 크게 동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윤회의 고리를 구태여 끊을 필요 없이 다음 생을 다시 살아보는 것도 제법 괜찮은 일 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18. 결론 : 나의 전생과 내세는 어떠할까요?

   그러면 나의 전생, 나의 내세는 어떠한 것일까요? 아마 가장 절실한 물음일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해답이 불경에 있기 때문에 법화경에 있는 부처님 말씀 한 구절을 옮겨드리겠습니다.
    

   欲知前生事
   今生受者是
   欲知來生事
   今生作者是

   전생 일을 알고자 하느냐?
   금생에 받는 그것이다.
   내생 일을 알고자 하느냐?
   금생에 하는 그것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현세에 태어나서 살아온 모습들은 바로 전생에서 내가 지은 것이므로 크게 신세 한탄할 일이 못되고, 이제 내 의지로 내 인생을 바르고 힘차게 살아갈 일입니다. 앞으로 내세는 지금 내가 살아가는 것이 결정할 것이므로 앞으로 바르고 착하게 어려운 내 주위도 돌아보면서 남은 생을 잘 살 일입니다. 그래야 내세에 잘 태어날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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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제까지 성철 스님의 법어집 ‘영원한 자유’ (1988.장경각)에서 많은 부분을 발췌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제목: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


사진가: kec

등록일: 2010-03-09 07:04
조회수: 1519 / 추천수: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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