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김의창의 그림이야기

모나리자 유감
모나리자 유감

   대구 일이회는 모임을 시작하기 전에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주제 토론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전에 제 차례가 되었을 때에는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작품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 다시 제 차례가 되어서 무슨 주제로 이야기를 꺼낼 까 하다가 역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모나리자라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준비를 하였습니다. 몇 차례 유인물을 가지고 갔는데 그 때마다 무슨 일이 있어서 발표를 못하였기에 여기 카페에 실어서 우리 동기 분들이 보시도록 합니다.

1. 작가에 대하여

   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h, 1452. 4. 15. ∼ 1519. 5. 2.)는 이탈리아의 화가로 물리학, 역학, 광학, 천문학, 지리학, 해부학, 기계공학, 식물학, 지질학, 수리학, 토목공학 등을 연구하여 박학다식하였으며 노래도 잘 했으나 성격이 좀 변덕스러웠다고 합니다. 학자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두뇌가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나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은 2,000년 대 후반에 태어났으나 타임머신을 타고 당시 문예부흥기로 날아간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설도 있습니다. 그 만큼 동시대 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여러 가지 기계들 (예컨대 비행기나 헬리콥터 같은)의 설계까지 하였으니까요.
   그는 피렌체에서 여러 분야에 걸쳐 활동하다가 말년에는 프랑스 임금 Francis I세의 부름을 받고 파리로 가서 말년을 비교적 안정되게 보내다가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프랑스와즈 I세에게 가서 그가 한 일은 그냥 임금과 담소를 나누는 것뿐이었다고 합니다.

   천재들이 그러하듯이 다 빈치도 끈기가 없어서 많은 기록물들이 미완성인 체 남아 있고, 특히 비행기나 헬리콥터들의 설계도는 다른 이가 도용할 까봐 일부러 조금씩 틀리게 그려서 좀 이상하다고 합니다. 기록물도 좌우를 바꾸어서 썼는데 이는 자신이 왼손잡이여서 그렇다는 설과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이 읽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서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화가로서 과작을 한 신인상파의 쇠라(Seurat)는 그래도 평생에 17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다 빈치는 고작 7점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는 마지막 죽을 때에 너무 게을렀던 자신의 인생을 후회했다고 합니다.

  2. 이 작품에 대하여

   모나리자의 제작 연대는 1508년에서 1512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목판에 유채로 그린 작품인데, 77x53cm이므로 대략 20호 가량의 크기입니다. 당시만 해도 유력가의 주문에 의해서 교회나 큰 건물의 벽에 회칠을 한 후에 회가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려 말리는 프레스코 벽화가 유행을 했었는데 이 작품은 세계 최초로 작가가 팔기 위해서 그것도 유화로 그린 작품입니다. 당시만 해도 유화 물감이 처음 개발되어 화가가 안료를 기름에 개어서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점점 검게 퇴색하고 있으나 복원을 할 수도 없어서 그냥 두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사범학교 시절 김수명 선생님에게서 유화 물감 만드는 법을 배운 기억이 납니다. 튜브에 넣어서 사용하기 편하게 만든 유화물감은 당시에는 상상도 못할 시기였습니다.
   나중에 다 빈치가 프랑스로 갈 때에 이 작품을 가지고 갔는데, 일설에 의하면 미완성이었기 때문에 완성시키기 위해서 여행 중에 가지고 갔다고도 하고, 프랑스 임금에게 보이고 팔기 위해서 가지고 갔다고도 합니다. 하여튼 프랑스와 일세는 이 작품을 4000 ducat에 샀습니다.
   프랑스에 혁명이 있어나고(1789년), 나폴레옹이 황제가 될 때까지 이 작품은 프랑스 임금의 욕실 등에 걸려서 벽을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자 그는 이를 1804년에 Louvre박물관으로 옮겨 지금처럼 그곳에 전시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점차 유명해지자 (지금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중에서도 항상 선두를 차지하고 있음), 위작 논란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이 작품에 다 빈치의 서명이 없는 것과, 그 동안 전시 중에 약 네 차례 분실이 되었던 것도 위작 논란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또 서양의 유명한 미술관에 가보면 이젤을 걸쳐 놓고 명작을 임화로 그리는 화가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이 모나리자도 모작이 많이 생겨난 것도 위작 논란의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특히 1911년 이탈리아 사람 Vincenzo Perugia라는 사람이 이 작품을 루브르에서 훔쳐 1년여 동안 감추어 두었었는데 이는 위작 논란을 크게 일게 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루브르에 장식 공으로 고용되어 일하던 중 이 작품을 훔쳐서 자기 모국 이탈리아로 가져갔습니다. 자기 말로는 이탈리아 화가가 그린 작품이 프랑스에 있는 것을 애국심으로 그냥 볼 수 없었다고 하지만 결국 가난한 노동자의 방에 버려져 있던 이 작품은 1년여 만에 다시 루브르로 돌아갔고 그는 감옥에 갔습니다.

   그 후 1960년대에 위작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 프랑스 예술원에서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 논의에서 1000여점의 모나리자 중에 최후로 4점의 작품이 진품 반열에 섰습니다. 당시 1962년인가 Reader's Digest 2월호인가에 이 4작품이 실리고 자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던 것을 본 일이 있지만 지금 기억이 흐릿합니다. 하여튼 지금 우리가 보는 작품을 진품으로 결정하고 앞으로는 위작 논란을 벌이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다 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작품들 중에 프랑스 예술원에서 진품이라고 결정한 작품일 따름입니다.
  

3. 제목에 대하여

   이 작품은 당시 이탈리아의 상인 Florentine Francesco del Giocondo의 아내를 그린 작품인데, 이 여인의 처녀 때 이름은 Elizabetha Maria Gerardini였는데 시집을 가서 Elizabetha Maria Giocondo가 되었습니다. Elizabetha의 애칭이 Lisa이므로 제가 가진 S.라이낙이라는 프랑스인이 쓴 미술사에는 이 작품의 이름이 Mona Lisa Gioconda 혹은 La Gioconda라고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Mona란 영어로 Mrs. 와 같은 뜻으로 ‘부인’이란 의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모나리자’라고 이 작품이름을 말하는 것은 잘못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되어집니다. 마리 퀴리 부인을 우리가 줄여서 퀴리 부인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모나 리자가 아니라 모나 죠콘다라고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박종봉 교수가 미국 아들네 집에 갔다 오면서 ‘Master Works of Art'라는 책을 사 와서 선물을 하였습니다. 거기에 보니 역시 Mona Lisa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잘못 번역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 사람들도 모나리자라고 하는가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에 동생이 루브르에 다녀왔다기에 사정을 물어보니 조그마한 그림 앞에 수많은 사람이 붐비어서 구경도 잘 하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다행히 달포 전에 우리 동기 이춘 선생님이 루브르에 간다기에 부탁을 하였습니다. 자세히 보고 제목이 무어라고 씌어 있는지 알아오도록 부탁을 했습니다. 돌아온 이춘 선생님의 말인즉, 그림만 있었지 아무런 제목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작품에는 다 빈치의 서명도 없을 뿐 아니라 제목도 없으며 우리가 모나리자라고 하는 것은 이 작품의 제목이 아니라 그냥 이 작품을 지칭하는 것뿐이구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3. 작품 속의 인물에 대하여

   후일 세잔느가 흔히 인물을 그릴 때에 했듯이 아름다운 여인이 원추형으로 떡 버티고 있는 이 작품을 보면 증권가에서 흔히 말하는 ‘미인의 기준은 변한다.’라는 말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물의 구도가 적절하고 특히 손은 풍부한 해부학적 지식으로 능숙하게 그려져 있다고 하지만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별로 미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체중을 넘어서서 고도비만은 아니라도 좀 비만한 여인네가 눈썹도 없이 그려져 있습니다. 당시에는 눈썹이 없는 여인이 미인이라는 기준이 있어서 모델이 눈썹을 밀어버렸다는 것이 통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오묘한 모나리자의 미소는 모델이 너무 딱딱한 표정이라서 다 빈치가 여러 가지 악기를 두드리고 하여서 살짝 웃을 때에 스케치했다고도 하고, 혹은 입술을 덜 칠해서 그러한 표정이 나왔다고도 합니다. 하여튼 이 작품에서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결코 미인은 아닌 여인이 버티고 있습니다.

4. 작품에서 배경에 대하여

   작년에 서울의 모 대학 미대 교수가 이 작품에 대하여 언급할 때에 배경으로 웅장한 풍경이 그려져서 잘 어울린다고 글을 쓴 것을 읽으면서 가소롭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만 하드래도 배경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그냥 보는 이가 지루하지 않게 더 감상할 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 인물과는 어울리지도 않는 엉뚱한 경치를 그려 넣은 것에 불과합니다. 어쩌면 이 당시 다 빈치가 세계 최초로 원근법을 작품에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그 기술을 과시하고 싶어서 그려 넣었는지도 모르지요.
   따라서 지금도 이 작품을 보면 인물과는 어울리지도 않는 엉뚱한 경치가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어서 참으로 망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5. 예술적 가치에 대하여

   미술사적으로 이 작품은 유화작품으로는 최초로 그려진 작품 중의 하나이고, 또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둘 목적으로 그린 최초의 회화 작품이고, 최초의 스푸마토(Sfumato:윤곽선을 부드럽게 뚜렷하지 않게 모호하게 그리는 기법)기법으로 그린 작품이고, 처음으로 원근법을 적용한 작품...등등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가치가 어떠하던 간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 받는 미술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1911년 이 작품이 도난당했을 때에 수많은 파리 시민들이 루브르 박물관 앞에 모여 통곡을 하였으며, 이듬해 이 작품을 이탈리아에서 발견하고 반환하기 전에 Florence, Rome, Milan 등에서 전시를 했는데 그 열광은 말로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합니다. 몇 년 후에 미국 뉴욕에서 전시를 할 때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뉴욕 시내에 도로 정체가 극심했고, 관람객이 작품 앞에서 10초 이상 머물지 못하도록 강제하기도 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지금도 루브르에서는 이춘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3층에 이 작품 단 하나만 전시해 놓은 방에 수많은 방문객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연 예술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그만큼 있느냐 하는 것은 좀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며칠 전 젊은 사람이 ‘오래된 지겹고 못생긴 초상화’라고 고전 명화를 평하는 것을 읽고 일리 있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모나리자는 프랑스가 멸망하지 않는 한 팔지 않을 것이라면서 세계에서 최고로 비싼 그림이라고 하니 대단한 것 아닙니까?

   (오늘 오후에 일이회 모임에 가기 전에 이 글을 카페에 싣습니다.2014.6.12.)
    
제목: 모나리자 유감


사진가: kec

등록일: 2017-04-30 12:11
조회수: 164 / 추천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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