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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김의창의 그림이야기

남기는 글

   제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생을 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난치이거나 재발을 계속하는 고질병을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제법 나이를 먹고 보니 이러한 경험을 그냥 혼자 가지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 경험을 글로 남기려고 합니다. 단, 이것은 순전히 제 경험이므로 다른 이에게도 꼭 이렇게 효과가 있다고는 장담을 못합니다.
   혹시 이웃 분들 중에 피부병이나 치질이나 이석 증으로 고생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읽어보시고 참고로 하시기 바랍니다. 단, 고질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돈 보다는 환자의 끈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할 일입니다. 많은 분들이 힘 들이지 않고 고질병을 고치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들었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문의는 제 이 메일로 보내 주세요. kecchang@naver.com)  
  
            “남기는 글”-1 뜸으로 피부병(습진) 완치

   지금도 제 어릴 적 생각을 하면 약한 몸에 특히나 피부가 좋지 않아서 벌레에 물리기만 하면 잘 낫지를 않고 물린 자리에 꼭 연고를 발라야 겨우 나았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6.25 전쟁 중에 그 가난한 시절에도 항상 00연고, 00고약 등의 피부약들이 상비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초등학교 6학년 여름이었을 것입니다. 모기에 물려서 그 자국이 어쩐지 탈이 날 것 같아 집에 있는 연고를 발라도 잘 낫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이야기 했더니 의원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당시 읍내에 조그마한 의원 하나가 있어서 거의 모든 병을 치료해 주었지요. 의사 선생님이 제 오른 팔목(정확히 손목복사뼈 부위)을 보시드니 습진이라면서 00연고를 내어서는 여기에 00마이신의 캡슐을 깨어 노란 마이신가루를 내어서는 함께 어깨어서 연고 통에 담아주면서 바르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피부가 나빠서 잘 낫지 않는 내게 아주 강한 처방을 해 주신 것 같았습니다. 당시는 아직 의·약 분업이 안 된 때였습니다.
   그 연고를 다 바르고도 낫지를 않아서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나를 데리고 다시 그 의원에 가서 의사선생님에게 아무래도 잘 안 나으니 아주 강한 주사를 한 대 놓아주라고 청했습니다. 그러자 그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또 주사를 놓아 주었습니다. 이도 효과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하교를 하니 어머니와 웬 낯선 남자들이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픈 곳의 나쁜 피를 뽑아야 한다면서(사혈) 힘센 어른 두 사람이 나를 잡고 한 사람이 굵은 침을 가지고 다가 왔습니다. 잠깐 동안이라고는 하지만 아픈 부위를 사정없이 십여 군대를 마구 찔러서 시커먼 피를 뽑아내는 것은 참으로 무섭고 견디기 힘들어 나는 마구 울면서 몸부림을 쳤지만 힘센 어른 두 명을 당하지 못하고 그 힘든 고문 같은 치료(?)를 견디어야 했습니다. 많은 피를 흘리고 치료는 끝났는데, 결국 이렇게 하고도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손목복사뼈 부위에 흉터만 남긴 채 낫지를 않았습니다.
   결국 중학교에 갈 때까지 낫지를 않고 나를 괴롭히고 있는 이 습진이 나에게는 꽤 귀찮은 존재였습니다. 오른 쪽 손목 복사뼈 근처 지름 3cm정도의 부위에 맑은 진물이 나는 조그마한 종기들이 가려워서 긁으면 또 진물이 나곤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긁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잠이 들어서 긁으면 나도 놀라서 깨곤 했습니다. 긁어서 살점이 떨어져 나간 곳을 보면 마치 스펀지처럼 생겼는데 잘못 심하게 살점이 떨어져 나가면 피까지 나곤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될 수 있으면 긁지 않으려 노력하곤 했습니다. 여름철에는 다행히 견딜 만 했지만,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는 햇빛이 닿기도 하고 가려지기도 하는 이곳만 유독 가렵고 진물이 나고 발진이 나기도 했습니다. 지저분하기도 해서 붕대로 감고 학교에 갔다가 체육 선생님에게 들켜서 꾸중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 1학년 때에 아버지께서 저를 데리고 대구에 있는 어떤 한의원에 갔습니다. 아마도 신문에 피부병을 잘 낫게 해준다는 광고를 보신 모양이었습니다. 진료를 받는 다른 분들이 다 돌아가기를 기다려 아버지는 한의사에게 제 습진 자리를 보여주면서 치료가 되느냐고 묻고, 한의사에게 각서를 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한약을 지어서 돌아왔습니다. 그 약을 다 먹었으나 낫지를 않아서 아버지께 말씀드리니 바쁘다면서 나보고 가보라고 했습니다. 혼자 그 한의원을 찾아서 항의를 하니 새로 또 무료로 약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약을 먹으니 이상하게도 몸에 두드러기 같은 것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겁을 먹고 어머니와 상의 후에 그만 먹기로 했습니다.
   그 후 나는 계속 습진과 함께 살아야 했습니다. 그저 손을 청결히 하고, 긁지 않고, 가려워도 참으면서 그렇게 살아야했습니다. 그 노인을 만나기 전까지는.

   교사로 근무 중에 군 복무를 하고 다시 복직을 해서 경북 경산군 와촌면에 있는 와촌 국민 학교에 발령을 받아 총각 선생님으로 근무를 할 때에는 한창 이미자씨의 ‘총각선생님’이라는 노래가 유행을 하던 때였습니다. 이 학교에 근무할 때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조그마한 집을 사서 그야말로 신혼생활을 할 때였습니다.
   어느 날 학교로 어떤 영감님이 쑥뜸 기계를 팔러왔습니다. 당시에는 시골에 이런 장사꾼이 어쩌다가 올 때도 있었는데 수업을 마치고 오후에 전 직원이 교무실에 모여서 이런 분의 설명을 듣고 사고 싶으면 사곤 하던 그러한 때였습니다.
   이 노인이 가지고온 쑥뜸 기계는 그냥 파이프를 개조한 것으로, 파이프를 고무호스로 길게 하여 입으로 불면서 파이프가 몸의 상처부위에 담배 대신 넣은 약쑥의 증기를 닿게 하는 아주 간단한 도구였습니다. 가격은 아주 싸지만 이 파이프로 약쑥의 증기를 상처부위에 닿게만 하면 그 어떤 병도 나을 수 있다면서 그야말로 과대광고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그게 굉장히 마음에 끌리었습니다. 치료 방법이 아주 간단하고, 가격이 싸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지만 만병통치이므로 내가 가장 골치 아파하는 팔목의 습진도 어쩌면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습니다. 나는 팔목을 걷어 부치면서 그 노인에게 이게 오래된 습진인데 이것도 쑥뜸으로 약쑥의 증기를 쐬면 나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노인 말이 그건 좀 오래 되었으니 대략 두 주일쯤 치료하면 나을 수 있다고 장담을 하였습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약쑥과 그 쑥뜸 도구를 샀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이 노인이 두 주일 하라고 했으니 나는 네 주일은 해야지 하면서.
   그 날부터 퇴근하고 나서 씻은 후에 한 번,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나서 또 한 번. 이렇게 하루에 두 번씩 그 쑥뜸기로 약쑥의 증기를 상처에 쏘였습니다. 그 노인의 말이 옛날에는 쑥으로 피부에 상처를 주면서 뜸을 하였는데 그럴 필요 없이 그냥 노란 쑥의 증기를 쏘여주면 치료가 된다고 하였지만 나는 조금 뜨거움도 참고 매일 하루 두 차례씩 이 치료를 계속해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좀 심하게 뜨거운 증기를 쏘여서 상처 부위에 화상을 입어 물집이 생기기도 하면 그 위에 계속 해서 매일 매일 치료를 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별로 나아지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네 주일이 되어갈 무렵 드디어 차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신이 난 나는 계속 치료를 해 나갔고, 그러고도 한 두어 주일이 지나자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나는 그 후에도 한 두어 주일은 더 뜸을 계속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약 두 달을 혼자 아침저녁으로 그 쑥뜸기로 치료를 하였던 모양입니다. 그리고는 치료가 다 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몇 달 후에 다시 조그마한 종기 비슷한 것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에게 말씀드리니 그것은 아마도 후유증일 것이라면서 20년 넘게 앓아온 고질병이 나으면 그 정도의 후유증은 있기 마련이라고 하셨고, 정말 며칠 지나니 이것도 사라졌습니다.
   드디어 나는 그 지긋지긋하던 습진으로부터 해방을 했습니다.
   지금 50년 가까이 지난 이 나이가 되도록 재발하지 않고 다른 피부에 이상이 있기는 해도 습진으로 고생하는 일은 없으니 당시에 습진이 완치된 것은 틀림없는 일입니다.

   (후일담)
   그 후 4년 만에 나는 와촌 국민 학교에서 진량면 부림 국민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오후 교무실에 전 직원이 모이라는 연락을 받고 가보니 바로 그 노인이 쑥뜸기를 여러 개 가지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인사를 한 후에 그 노인에게 실례지만 내가 설명을 하겠다고 하고는 나의 습진 치료 이야기를 전 직원에게 말하고 보답으로 나도 한 개 더 샀습니다. 그러자 많은 분들이 그 쑥뜸기를 구매해 주었습니다. 그 노인이 제가 근무하던 학교의 직원들에게 많은 쑥뜸기를 팔 수 있어서 나는 조금의 보은을 한 셈입니다. 그 후로 제가 퇴직할 때까지 그 노인을 다시는 뵙지 못했습니다. 다시 다른 학교에서 뵈었으면 또 보답을 해 드렸을 텐데...
   그리고 요즈음에는 의료기 상사나 한약 재료 상에 가면 아마도 내가 사용한 것보다는 훨씬 편리하고 유용한 쑥뜸기를 판매하고 있을 것입니다.
   후에 여러 경로로 알아보니, 약쑥이 좋다느니, 강화도 약쑥이 좋다느니, 그냥 모든 쑥은 인체에 좋다느니 하는 이야기도 있고, 뜸은 신체의 특정 부위에 체온을 올려서 면역력을 크게 강화시켜주며 우리 신체는 체온이 오름에 따라 면역력이 강화된다는 설도 있고..하여튼 이렇게 하여 나는 쑥뜸으로 나의 고질병인 습진을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남기는 글”-2 치질로부터의 해방

   보통 앉아서 생활을 많이 하는 사람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치질로 고생을 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치질로 제법 고생을 하였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치질을 앓게 된 것은 군복무를 하게 된 첫해의 일입니다. 훈련을 마치고 멀리 강원도로 가서 38선을 넘어 육군00사단 직할 병기 중대의 중대본부 사무 병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졸병 생활이란 힘들기 마련이지만 당시(1965년도)에는 특히 힘들고 고달픈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두어 달 근무를 하고 나니 이상하게도 항문 쪽이 이상한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볼일을 보고나서 깨끗이 닦았는데도 계속 찜찜한 느낌을 보이고 나중에는 무언가 뾰족하게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급기야는 아프기도 하였습니다. 다른 동료 병사들에게 이야기를 해보니 ‘치질’일거라고 했습니다. 한창 젊은 나이여서 치질이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어떻게 심하게 아파질 것인지 막연하게 겁이 났습니다.
   같은 사무실에서 매일 만나는 인사계님에게 얼굴을 찌푸리며 치질이지 싶다 면서 의자에 앉기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니 함께 걱정을 해 주었습니다. 사실 사무 병으로 의자에 앉기 힘든 상황은 인사계님으로서도 좀 곤란하다고 느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아무 말 없이 나를 불러서 중대장의 허가를 받았다면서 휴가증을 하나 내어밀었습니다. 내일부터 특별휴가를 15일간 보내어 줄 테니 집에 가서 병원에 가보라고 했습니다. 어찌 보면 치질 덕택에 나는 동기들 중에 가장 먼저 휴가를 갈 수가 있었습니다.
   갑자기 집으로 오니 정말이지 어머니는 버선발로 뛰어나오시면서 반가워하였습니다. 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 드리니 아버지는 웃으시면서 ‘너도 나처럼 치질에 걸리는구나. 걱정하지 마라. 좋은 한의원이 있으니 가서 처치하면 곧 낫는다.’라고 하시고 이튿날 함께 한의원에 가자고 했습니다.
   처음으로 조그마한 시골 한의원에 갔는데...이거는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억지로 치질을 처치하는 것 같았습니다. 뾰족하게 튀어나온 치질에 독한 한약재를(아마도 염산 같은 것) 주입해서 녹여서 없애는 것 같았습니다. 독약을 주입할 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그 후 대여섯 시간 동안의 고통은 견딜 수 없었습니다. 집에 와서는 엎드려서 고통을 그냥 참고 몇 시간을 견디어내었습니다. 대여섯 시간이 지나고 나서 고통은 서서히 줄어들었지만 용변을 볼 때에도 고통은 심하였고 며칠 지나고 나니 통증도 줄어들고, 나는 덕택에 친구들도 만나고 휴가를 즐기다가 무사히 귀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나는 제대하여 직장 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여 아이 낳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치질에 대해서는 별 생각 없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 나이 30대 중반이 되었을 때에 다시 치질이 재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앉아서 사무를 보는 일이 많은 직장 생활과 퇴근 후면 한잔 술로 스트레스를 푼답시고 몸을 좀 돌보지 않은 생활이 치질의 재발을 가져온 것 같았습니다. 참다 참다 못 견디어서 대구 시내의 좀 큰 한의원에 가서 다시 시술을 받기로 하였습니다. 이번에도 고통이 뒤따르는 시술을 받았고, 제법 긴 시간 동안 고통을 참고 견디어야 했지만 이 전과 같이 하루 이틀 지나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아내와 당시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왜 그렇게도 고통이 심한데 진통제 하나 사먹지 않았을까 하고 미련했었다고 웃고 맙니다. 하여튼 두 번 째로 치질이 다시 나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나는 치질 때문에 제법 걱정을 하면서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술을 며칠 먹고 나면 치질이 나올 듯한 증상을 보이고..그러면 나는 술을 며칠 끊고 치질이 다시 들어가기를 기다려서 좀 나아지면 다시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어울리고 하였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나서 내 생각에 당시 한창 혈기 왕성한 젊은 때에 치질이 나를 지켜주어서 내가 알코올중독에 걸리거나 간에 손상을 크게 받지 않고 지금까지 그래도 제법 건강하게 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당시 열심히(?) 계속 연이어 술을 마시던 친구들 중에 술 때문에 타계한 친구들이 몇 있어서 그 친구들을 생각할 때면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라는 ‘보왕삼매론’에 나오는 글귀를 떠올리곤 합니다.
   그 후 한 십여 년을 치질이 나올 듯 다시 들어가기를 반복했지만 40이 넘어서면서 드디어 견디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직장 동료가 대형 병원에서 치질 수술을 하였는데 수술 후에 완치되어 정상적으로 출근을 하고 있었고, 당시에 나도 치질이 아주 심하여서 기저귀를 차고 출근을 하고 있었던 때여서 이번에는 한방병원이 아닌 대형 병원이나 전문 외과병원에 가서 수술을 하여 완전히 치질과는 이별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치질 수술을 한 직장 동료가 수술 시에 고통이 극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좀 망설여지기도 하고 은근히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과 개원의인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치질 수술을 잘 하는 분을 소개해 달라고 하였더니 자기 후배라면서 외과의원을 개업한 의사를 소개해주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그 병원을 방문하였더니 항문 부위를 내시경을 하면서 모니터에 현재 앓고 있는 치질부위를 보여주었습니다. 옆으로 누워서 모니터를 보니 내가 보기에도 굉장히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담당의사는 이제 곧 수술을 해야 할 것이라면서 입원 수술을 권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의논 후에 수술을 하기로 하고 절차를 밟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개인 병원이라서 입원실에 침구가 마땅한 것이 없으니 일단 귀가하여 개인 침구(요와 이불)를 가지고 다시 병원으로 오라고 하였습니다. 아내와 나는 하릴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아내는 이것저것 입원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짐 보따리를 준비하고 있는데 마침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 친구와의 통화 내용을 간추려 적어보겠습니다.
친구 : 지금 뭐 하시나?
나 : 아이고, 나 지금 치질이 심해서 입원 수술하려고 병원에 갈 준비를 한다.
친구 : 뭐? 치질 때문에 수술을 한다고? 야 이 친구야 치질이면 수술할 필요가 없다. 내가 좋은 방법을 가르쳐 줄게.
나 : 무슨 좋은 방법이 있는데...
   그래서 이 친구의 이야기를 전화로 자세히 듣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의 말에 의하면, 치질이란 무슨 병균에 의한 병이 아니라 단지 항문 주위의 혈관에 피가 잘 순환이 되지 않아서 혈관이 뭉친 것으로 이를 외과적 방법으로 잘라낼 수도 있으나 더운 물로 찜질을 해서 혈액 순환이 잘 되게 하면 저절로 낫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세수 대야 같은 곳에 대이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물을 담아서 궁둥이를 매일 30분 정도로 담구면 혈액 순환이 좋아져서 저절로 낫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솔깃해졌습니다. 사실 수술이 겁도 나고 고통을 두 번씩이나 겪어보았으니 썩 내키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의논을 하니 그렇게 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해서 바로 병원에 연락을 하였습니다.
   그날부터 나의 또 끈질긴 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 우선 대야에 대이지 않을 정도의 뜨거운 물을 반쯤 담고는 궁둥이를 담구었습니다. 옆에는 뜨거운 물이 담긴 주전자를 두고 물이 식으면 조금씩 부어가면서 찜질을 대략 30여분을 하였고 이를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차례씩 하였습니다. 대략 열흘 쯤 지나니 차도가 제법 있어서 이제는 기저귀를 차지 않고도 출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침 집에 놀러온 동서에게 들키어서 이 사람이 어디서 구하였는지 궁둥이 찜질을 하는 전기 기계를 하나 사서 선물을 하였는데...이 기계는 아주 간단하지만 궁둥이 찜질은 안성맞춤으로 할 수 있게 고안된 것으로 아주 편리하였습니다. 플라스틱으로 원통형으로 만들어 아래쪽에는 쑥과 물을 함께 끓일 수 있게 하고 그 위에 편안하게 앉으면 그 김이 솔솔 올라와서 항문을 데워주도록 설계되어 있었는데 온도와 시간을 자동으로 조절할 수 있게 설계 되어있었습니다. 이제 나는 이 찜질 기계로 매일 아침저녁 TV를 보거나 독서를 하면서 30여분 동안 궁둥이 찜질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한 달도 체 되지 않아서 내 궁둥이는 깨끗하게 나앗고 그 후에도 조금 더 찜질을 하고나서 그만 두었지만, 용변 후에 닦지만 않고 항상 깨끗이 씻는 버릇은 이때부터 들였고, 과음을 하지 않고, 이상이 있으면 며칠 찜질을 하면서 그 후 30여년을 별 이상 없이 지내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치질에는 수술보다는 고마운 친구가 권해준 더운물 찜질이 나에게는 가장 효과적이었나 봅니다.

“남기는 글”-3 이석증 치료하기

   젊은 날에는 이석 증이라는 병이 있는 줄도 모르던 나였습니다. 내 나이 50대 후반이 되어서 어느 날 아침에 출근을 하는데 갑자기 이석 증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당시 나는 대구의 신천 동로를 달려서 출근을 하고 있었는데, 이 도로는 신천 대로와는 다르게 시속 80km가 아니라 시속 60km도로입니다. 그만큼 이 도로는 한적하였기에 다행히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어지러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깜짝 놀란 나는 차를 도로 가에 대어놓고 잠시 동안 정신을 추스르려고 하였습니다. 이상하게 주위가 정상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데에도 어지러움을 느꼈습니다. 한 10분쯤 기다린 결과 가까스로 어지러움이 멈추고 출근을 할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고개를 옆으로 갑자기 혹은 심하게 돌리거나 자세를 급하게 바꾸면 어지러운 증세가 나타나서 한참을 안정을 취하여야만 하였습니다. 퇴근을 한 후에도 증상은 사라지지 않아서 역시 의사 친구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의사 친구를 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러웠습니다.
   이 친구 말에 의하면 어지러움 증은 귀의 이상이나 뇌의 이상일 경우인데..우선 이비인후과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고 귀에 이상이 없을 경우에 뇌에 이상이 있을 수 있으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로 동네 이비인후과에 진료를 받으러 갔습니다. 진찰을 마친 의사는 이석 증이라면서 나를 침대에 앉히고는 갑자기 이쪽저쪽으로 급히 눕히면서 그 후에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는 약을 처방해주었습니다. 이상하게 그 후에 어지러움 증은 완전히 사라지고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그 후에 퇴직을 하고 십 년 쯤을 아무런 이상 없이 잘 지내어 왔는데 거의 10년이 지난 60대 중반에 다시 이석 증이 재발을 하였습니다. 당시 퇴직 후에 아내와 함께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던 중에 갑자기 어지러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헤엄쳐 가다가 수영장 바닥이 울렁거리고 빙빙 돌아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어 수영을 멈추고 물 밖으로 나온 나는 조심스레 옷을 갈아입어야하였습니다. 이비인후과를 찾은 나는 역시 같은 진찰과 같은 처치 및 처방을 받았습니다. 의사의 말로는 평영은 괜찮으나 자유영이나 심하게 머리를 좌우로 움직이는 수영은 당분간은 조심하라고 하였기에 나는 한 일 주일쯤은 평영만 하면서 지내어야 하였습니다. 이때에도 다시 잘 나았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도 이석증이 재발을 하게 되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이비인후과를 찾게 되었고, 이를 메모해둔 것이 있는데 지금 보아도 재발의 빈도가 점점 잦아지게 되었습니다. 2016년 6월 10일, 8월 24일, 9월19일, 이제는 거의 한 달에 한 번씩은 이석 증이 재발하여 병원에 가야하고 사나흘의 치료를 거쳐 정상으로 돌아오고 다시 재발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확하게 2016년 9월 19일) 아내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갑자기 어지러움과 함께 구토 증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내에게 이야기하고 다음 지하철역에 내려서 바로 옆에 하수구를 찾았습니다. 그리고는 크게 구토를 하였습니다. 옆에 지저분하게 되었기에 아내에게 올라가서 사무실에 가서 이야기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내가 돌아와서 이야기가, 직원이 자기네가 치울 터이니 그냥가라고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옆 의자에 앉아서 아내와 의논을 하였습니다. 우선 가까이(대구시 범어 로타리)에 있는 방사선과에 가서 뇌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고 하니 그러자고 하였습니다. 다시 다음 지하철을 타고 병원을 찾았더니 그날은 하필 환자분들이 많아서 좀 대기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어지럽고 구토증이 나서 좀 누웠으면 좋겠다고 하니 간호사실로 안내를 하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간호사실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또 쓰레기통에 크게 토하고 말았습니다. 병원 측에서는 크게 당황하여 위급환자라면서 나부터 뇌 MRI 촬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으니 이비인후과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어지러움 증이 심하면 구토를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릴없이 우리 두 부부는 다시 이비인후과를 찾아 치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도 가기 전에 다시 재발하여 병원을 찾아오는 나를 보고 치료를 마친 담당 의사가 그날은 A4용지 한 장을 건네주었습니다. 앞으로는 여기에 있는 이 운동을 해 보세요 하면서 주는 종이에는 간단한 체조 요령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Brandt-Daroff운동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나는 휴대폰을 내어 이를 검색해보니 동영상이 나와 있는데 소파에 앉아서 간단하게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5회 반복으로 1일 2회씩 하게 되어 있었는데 6일 정도 하였지만 별 차도가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심해지는 듯하기도 해서 그만두었습니다.
   경과를 보기로 하였지만 별로 좋아지지를 않아서 조심조심 눕고 일어나고 머리를 좌우로 움직이지 않으며 조심스레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준비도 돈도 들지 않는 것이라서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9월 29일부터 다시 Brandt-Daroff 운동을 재개했습니다. 그런데 10월 2일부터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2주일간을 계속 하루에 두 차례씩 5회 반복으로 매일 이 운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나은 듯하여 그만두었습니다.
   이때가 정확히 2016년 10월 중순. 지금은 2019년 8월. 거의 한 달에 한 번쯤 재발하여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며칠씩 조심스레 생활을 하면서 고생을 하던 이석 증은 이제 나에게서 사라졌습니다. 다시 또 재발하면 나는 인터넷 검색을 하여 이 운동을 찾아서 거기 있는 동영상을 따라할 생각이지만 아직은 재발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후기: 쑥뜸은 데이지만 않으면 부작용은 아직까지 없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궁둥이 더운물 찜질도 데이지만 않으면 부작용이 없습니다. Brandt-Daroff운동도 잘못하여 소파의 손잡이에 머리를 부딪힐 위험은 있으나 미리 주위를 잘 정리하고 시작하면 이 또한 다른 부작용이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제가 치료하여 효과를 본 것은 끈기 있는 노력으로 얻은 결과이며, 또한 저 개인적 경험이므로 모든 분이 이런 효과를 본다고는 할 수 없다는 점을 적어둡니다.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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